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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서점과 책 한권

시선으로부터

by 하린halin 2021. 10. 19.
 

시선으로부터,

출판계에서 2020년 가장 많은 시선을 모은 문학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하라면 <시선으로부터,>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시선으로부터,>는 예악판매 기간 중 종합 베스트셀러 1위(알라딘)에 올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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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시대는 여자도 엄마의 성을 따를 수 있는 시대이다.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지만, 아이를 낳고 나서 이 문제를 거론하기 시작하면 성격을 버려가며  온갖 공격을 당하며 투쟁을 해야 하므로, 투쟁하기 싫어하는 성격 탓에 아니 용기가 없는 탓에 시댁은 물론이고 보수적이고 남성 편향적인 나의 친정에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않았다.

나의 아이가 자신이 전주 이 씨임을 자랑스러워할 때, 그건 자기 조상중에 이렇게 잘난 조상이 있으니 그 사람을 좋은 점을 본받으라는 것 일뿐 할머니, 외할머니의 계열로 올라가 엄마 쪽으로 흐르고 흐르면 결국 우리의 피 속엔 온갖 성씨가 다 모여있게 되는 것이라고 종종 이야기하긴 하지만, 남편은 역시 못마땅하고 싫은 기색이다. 뭘 그렇게 따지고 어렵게 생각하냐면서... 나 또한 아빠의 성을 물려받았기에 내 성을 물려준다 한들, 내 아이는 외할아버지의 성을 물려받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아빠의 성과 엄마의 성을 하나씩 물려받아 두 글자의 성으로 아들과 딸에게 각각의 성을 이어주는 복잡한 체계를 사용하는 이들도 있지만, 뭐 성씨가 그리 중요한가라는 생각이 문득 떠오르기도 하고, 아예 성씨 같은 것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자주 사로잡히곤 한다. 내 성이 나에게 주는 정체성은 아주 작은 것이니까.

시선으로부터는 한 집안의 가계를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아닌 할머니를 중심으로 풀어낸다. 모계중심의 가계여서가 아니다. 그저 부계가 아닌, 이 시대를 살아온 모계에 맞추어  한 집안에서 딸로 여자로 살아온 각각의 사정과 얽힌 사연들을 풀어놓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등장인물도 많고 중간에 인물에 대한 어떤 소개도 없기 때문에 글을 읽는 동안 앞장에 나와있는 관계도를 여러 번 보고 인물을 익혀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책을 읽어보기 전에 가계도를 유심히 살펴보아야 책 내용이 쉽게 들어온다. 나처럼 사람 이름을 잘 못 외우는 짧은 기억력으로 관계를 따져가며 읽으려면 좀 인내력이 필요하기도 하다. 

할머니의 제사상을 차리기 위해 무엇인가를 결정하고, 그것을 찾아가는 일련의 과정들이 결국엔 자기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이 아닌가 생각을 한다. 혼자 읽는 것도 좋지만, 시선으로를 출판한 문학동네에서 하는 책 읽기 프로젝터에 참여했다.

회비가 있지만, 첫 참여는 공짜니까 큰 부담 없이 차분 차분 음미해가며 책을 읽었다. 그러나 중간에 추석이라는 큰 복병이 끼인 관계로 또한 한 집안의 딸이자 며느리인 나에게 이런 호사가 계속되지 못했지만, 그래도 마감시간이 지난 이후까지 함께 주워진 미션을 진행하며 책과 나 사이의 다리를 마련하는 뜻깊은 시간이 되었다.

 

완독챌린지 독파

완독을 위한 슬기로운 독서생활, 독파 메이트가 함께하는 최적의 독서플랜. 한 달에 4권, 1년에 48권, 책 읽는 사람들의 물결 완독챌린지 독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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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 1 : 내가 가지고 있는 책 표지는 어떤 디자인?

내가 가지고 있는 버전은 원래 오리지널 버전이다. 영롱한 산호초가 빛나는 버전, 깊은 바다와도 어울리는 그 바다의 느낌이 좋았다. 책을 읽고 나니 더더욱 그 영롱한 산호초가 시선 같다. 요즘 판매되고 있는 버전은 하와이 버전인데, 귀여운 일러스트에 앙증맞은 느낌도 좋지만 오리지널 본은 기본적으로 소장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집 앞 서점까지 직접 가서 구매하게 되었다.

시선으로부터의 다른 버전 좌 새해버전 우 하와이버전

 

미션 2 : 내가 가지고 있는 추억의 물건은?

책에 나오는 손자 우윤이 할머니의 오래된 스커프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나에게도 오래된 추억의 물건이 있다. 그것은 내가 고2에서 고3을 넘어가는 겨울에 아버지가 사주신 하얀 목도리이다. 남다른 미적 감각을 소유한 아버지는 자주 차갑고 모던한 물건을 좋아하시던 어머니에게 제재를 당하셨지만, 그때는 아버지와 나만 외출했기에 나에게 아주 화려한 스웨터와 그 당시엔 참 뽀송뽀송했던 하얀 목도리를 사주셨다. 그때 당시 아빠는 참 나에게는 어려운 사람이었고 한 번도 나에게 물건을 사주신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날은 어쩐 일이었는지 식구들이 다 외출을 해서 아빠와 나만 외식을 나가게 되었고 그날 처음으로 아빠가 직접 고른 선물을 받게 된 것이었다. 밥 먹고 돌아오는 길에 쇼윈도를 보고 아빠는 무슨 마음이 드셨는지 나를 이끌고 들어가 평상시에는 살 수 없는 값비싼 옷을 사주셨다. 28년 된 그 하얀 목도리는 어떤 옷에도 잘 어울려서 아직도 나는 그 목도리를 두른다.

 

 

미션 3 : 사전조사? 끌리는 대로? 나의 미술관 관람 방법과 최애 미술관

나의 최애 미술관은 성곡미술관이다. 아름다운 조각공원이 같이 있는 성곡미술관은 작은 미술관이지만, 특히 봄이 아름답다. 벚꽃이 피는 봄에 전시와 함께 좋은 벗과 차를 한잔 마시며 감성을 채우기 좋은 공간이지만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카페를 오픈하지 않는 게 아쉽다. 아이와 전시를 갈 때는 좀 더 도움이 되기 위해 공부를 하고 가는 편이지만, 훌쩍 기분 내킨 대로 방문한 미술관에서 마음에 드는 그림 앞에 오래오래 서성이는 것을 좋아한다. 굳이 해석하지 않아도 맘에 끌리는 작품을 보고 있으면 소통한다는 느낌이 드니까...

 

미션 4 : 100페이지를 읽고 나서...

100페이지 소설의 1/3 지난 지점. 간간히 앞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시선의 인터뷰들이 마음에 쏙쏙 박힌다. 인생의 굴곡을 지나 상처를 간직한 그녀가 내뱉는 이야기들이 맘을 적신다. 가장 공감이 가는 인물이 있다면 시선의 며느리이다. 남편이 일찍 부모님을 여읜 바람에 나는 한 번도 며느리인 적은 없다. 아이가 아파서 힘든 시간을 보낸 그녀에게 참 특별했던 어머니였던 시선 그렇게 읽어대던 그녀에게 예언처럼 건넨 말이 참 인상적이다. "그렇게 많이 읽는데? 별의별 것에 대해 읽는데?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애벌레처럼 읽는 사람은 결국 쓰게 되는 거야." 25쪽

매력적인 시어머니란 이런 존재일까 대놓고 충고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보아주는 그런 시어머니.

 

 

미션 5 : 가장 치열했던 나의 도전은?

내가 살면서 가장 치열하게 도전했던 것은 대학원 입시이다. 학부로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은 내가 미대의 일반대학원을 목표로 3개월간 아주 치열하게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그림을 그렸던 시기이다. 따로 물러설 길도 없었고, 다시 도전할 수도 없었기에 그때 필사적으로 준비했다. 힘든 시기였지만, 놀러 간 홍대가 아니라 나의 일상처럼 그림을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좋은 결과를 얻었다.

 

 

미션 6 : 시선이 남긴 말 중에나 가장 인상은 구절은?

누군가는 유전적인 것이나 환경적인 것을, 또는 그 모든 걸 넘어서는 노력을 재능이라 부르지만 내가 지켜본 바로는 질리지 않는 것, 수십 년 한 분야에 몸 담으면서 흥미를 잃지 않는 것. 같은 주제에 수백수천 번씩 비슷한 듯 다른 각도로 접근하는 것. 사실 그들은 계속 같은 일을 했다. 288쪽

시선이 남긴 말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이것이다. 재능을 따지는 세상, 어려서 부터 재능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는 세상이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이 일을 질리지 않고 좋아할 수 있느냐 끝까지 파고들 수 있느냐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요즘 절실하게 느낀다. 꾸준하고 성실하고 한결같기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렇게 한 우물을 파는 것을 보고 몰입이라 부르고 그를 일컬어 대가라고 부른다고 생각한다. 그 길로 들어서기 위해 심사숙고했다면 그다음부터는 의문을 자주 품기보다는 파고 파도 새롭고 새로운 창조의 깊이와 다양한 의미를 만들어 내는 것이 결국 세상에 깊이 있는 통찰과 교훈을 가져다준다.

 

 

미션 7 : 내가 몰두하고 있는 것

자연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별로 없겠지만, 요즘 들어 나는 특히 꽃에 관심을 많이 갖는다. 너무 흔하지만, 그 흔한 주제를 나만의 관점으로 풀어내고 싶고, 실제로 꽃을 좋아해서 꽃에 대해 조사하고 꽃을 사는 것도 좋아한다. 

가장 치유가 되는 시간을 되돌아보니 결국 정원을 가꾸거나, 텃밭을 가꾸었던 시간이었다. 끝까지 가지고 갈 주제라고 생각한다.

 

 

미션 8 : 긍정적 에너지를 나눠주었던 여성 아티스트

최근에 전시회에 갔었던 로즈 와일리가 있다. 그녀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풀어나간 거대한 작품과 스케일이 좋았다. 그녀는 사십이 넘어서 미술을 시작했다. 너무 늦은 나이란 없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준 그녀의 작품들과 그녀의 독특한 세계관이 개성 넘치고 매력 있었다. 작품에 대한 해석보다 그 자체를 보아 달라는 그녀의 말. 영화광이었던 그녀가 자신이 본 영화를 자신만의 시선만으로 풀어낸 위트 가득한 작품들이 맘에 들었다.

 

 

미션 9 : 안될 것 같은데 해내고 말았던 일은?

다른 것은 몰라도 난 참 체육을 못하는 아이였고, 지금도 몸치다. 그래서 안될 것 같은데 해 낸 것은 대부분 체육에 대한 것이다. 그중에 가장 나에게 무력감을 많이 가져다준 것은 야구였는데, 팀으로 하는 경기이기에 나의 무능함은 팀을 힘들게 했다. 늘 연습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주어진 기회 내에 공을 쳐서 안타를 만들어내는 일은 불가능해 보였다. 몇 번이고 삼진아웃을 당했다. 투수와 공의 속도 사이에서 배트를 휘두르는 타이밍을 잡아내는 게 너무 중요했다. 숨을 가다듬고 몇 번의 실험 끝에 결국 나는 시원하게 3루타를 쳤고, 그 이후에 그 타이밍을 직감적으로 알게 되니 삼진을 당하는 일은 없어졌다. 적어도 내 할 몫은 한다는 뿌듯함과 희열을 느꼈다.  

 

 

미션 10 : 시선으로부터의 후기

시선으로부터는 심시선을 중심으로 가족들의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옴니버스처럼 엮여있다. 중심적인 이야기에 여성화가, 작가, 예술인으로 살았던 시선의 고달픈 삶과 지혜가 녹아있는 그녀의 따뜻한 격려와 충고가 에세이처럼  녹아져 있다. 그녀를 악랄하게 괴롭힌 정신을 쏙 빼놓는 그로부터의 탈출, 끝까지 남긴 상처들 속에서도 꿋꿋하고 호탕하고 건강하고 당당했던 그녀의 삶이 아름답다. 물론 그녀 혼자만의 힘으로 이겨낸 것은 아니다. 그녀를 도운 사랑과 우정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그녀의 예술 여정의 시작이자 고난의 시작이었던 하와이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습 속에 그녀의 삶과 사랑을 이어 내려가며 구성된 가족들의 또한 쉽지 않았던 삶이 오버랩되면서 겹겹이 색이 쌓이는 책이다.

그러나 삶은 계속되고 치유되고 살아간다. 시선의 그 강단이, 그 단단한 씨앗이 뿌리내려 각자가 자기다움을 찾아 자기스럽게 살아가는 모습을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현대적 진한 감성으로 깔끔하게 그려낸 책이다.

나는 이 시대에 우리의 롤모델이라고 부를 만한 여성 예술가의 모습을 시선으로부터에서 다시 한번 떠올려봤다. 삶은 어렵다. 슬프다. 괴롭다. 힘들다. 모르겠다. 그러나 살아가라고 툭 웃으며 괜찮다 하며 버팀이 될만한 대들보 같은 말을 심어주는 어렵지 않은 대선배 같은 느낌이랄까.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지만 결국 꺾이지 않는 유연한 나뭇가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선으로부터 밑줄들....

 

 

이렇게 대단한 걸 그려도 그 보다 중요한 정보는 남성화가의 배우자란 점인지 지난 세기 여성들의 마음엔 절벽의 풍경이 하나씩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최근에 더욱 하게 되었다. 15쪽

 

 

"그렇게 많이 읽는데? 별의별 것에 대해 읽는데?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애벌레처럼 읽는 사람은 결국 쓰게 되는 거야." 25쪽

 

 

예민해서 아름다운 사람들이었다는 건 압니다. 파들파들한 신경으로만 포착해 낼 수 있는 진실들도 있겠지요. 단단하게 존재하는 세상을 향해 의문을 제기하는 모든 행위는 사실 자살을 닮았을 테고요. 

스스로 비틀린 부분을 수정하는  것 그것이 좋은 예술가가 되는 길인지는 몰라도 살아 있는 예술가가 되는 일임은 분명합니다. 30쪽

 

 

화수와 비슷하거나 몇 살 위였을 터였다. 그 나이의 할머니를 만났으면 친해졌을까? 우윤은 가끔 궁금했다. 62쪽

 

 

친구들을 모조리 떠나보내는 건 끔찍해 얼마나 끔찍한지 몰라 차라리 젊은 시절 행려병자로 죽은 이들이 부러울 정도야. 63쪽

 

 

근데 원래 예술보다 예술 조금 옆이 더 재밌다. 나도 그랬었다. 67쪽

 

 

우윤은 더 이상 아이가 아니었지만 마음속에 늘 아픈 아이가 있었으므로 서핑을 해봐야겠다고 결정했던 것이었다. 101쪽

 

 

탁월한 재능이 엿보인다고, 좋은 기회를 주겠다고, 나에게 관심 있어할 사람들을 소개해 주겠다고 후하게 제시하는 사람을 그냥 믿어서는 안 되었다. 105쪽

 

 

"결정적인 순간에 타인을 위해서 어떤 일을 할 것인가, 스스로가 다치게 되어도, 그런 의미로?" 141쪽

 

 

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아주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였다. 그가 죽이고 싶었던 것은 그 자신이기도 했겠지만 그보다 도 나의 행복, 나의 예술, 나의 사랑이었던 게 분명하다. 178쪽

 

 

좆같은 일이 화수에게 일어났다. 좆같다는 말을 쓰는 사람이 될 줄 몰랐지만 유해한 남성성을 그보다 잘 표현하는 말도 없을 것 같았다. 할머니는 욕도 표현의 일종이라고, 다만 정확하고 폭발력 있게 욕을 써야 한다고 말했었다. 183쪽

 

 

손님들이 많이 오는 집이었잖아요. 손님들이 꼭 오빠만을 두고 '크게 될 놈'이라고 칭찬했거든요. 어느 날 엄마가 그게 싫었는지 매번 반복해서 말하는 손님한테 '그럼 우리 딸들은 요? 작게 될 년들인가?" 하고 확 무안을 줬어요. 그때 제 어깨를 안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 딸들'에 제가 포함된다는 걸 알았고 기뻤던 기억이 있어요. 191쪽

 

 

음, 네 여기가 천박한 시장 바닥에 되는 걸 막으려는 사람들은, 착취적이지 않은 진짜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은 모두 로컬이라고 부를 수 있겠죠" 214쪽

 

 

그러니 남는 질문은 이렇습니다. 자기 자식이 어떤 성품인지 다 아실 테니 재능이 있고 없고를 떠나, 하지 않으면 스스로 해칠 것 같습니까? 즐겁게 그리고 쓰고 노래하고 춤추는지, 하지 않으면 괴로워하는지 관찰하십시오. 특히 후자라면 더더욱 인생의 경로를 대신 그리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런 아이들을 움직이는 엔진은 다른 사람이 조작할 수 없습니다. 220쪽

 

 

 어떤 새는 기가 막히게 영리한 반면 또 어떤 새들은 전혀 자기 보호 능력이 없다는 것이 해림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 속절없이 죽을 만큼 순진한 종들에 대해서는 화가 날 정도다. 그 화의 대상은 따지고 보면 새들이 아니지만.. 222쪽

 

 

난정은 주로 책을 읽었고, 책을 읽고 난 다음에도 그 책에서 뻗어 나온 생각들을 머릿속으로 따라가기 바빠 앞뒤 좌우를 설명해주지 않고 중간부터 대화를 시작하는 사람이었다. 233쪽

 

 

일을 얼마나 사랑해야 하는지 여전히 감이 오지 않았다. 일을 사랑하는 마음이야 말로 길들여지지 않는 괴물 늑대와 같아서, 여차하면 이빨을 드러내고 주인을 물것이다. 그렇다고 일을 조금만 사랑하자니, 유순하게 길들여진 작은 것만 골라 키우라는 것 같아 자존심이 상했다. 248쪽

 

 

그래도 요즘 여자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걸 모조리 경제적인 이유로 설명할 수는 없어요. 공기가 따가워서 낳지 못하는 거야. 자기가 당했던 일을 자기 자식이 당하는 걸 상상하는 것만으로 견딜 수가 없어서. 혼자서는 지켜줄 수 없다는 걸 아니까. 한국은 공기가 따가워요. 322쪽

 

 

젊은 시선은 가족들이 아는 뾰족한 얼굴로 딴생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다른 삶을 원하는 얼굴, 자기 삶을 계획하는 얼굴, 가진 것 없이 비극으로 시작해도 뭔가를 이룰 것 같은 얼굴이었다. 327쪽

 

 

우리는 추악한 세상을 살면서도 세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던 그 사람을 닮았으니까. 엉망으로 실패하고 바닥까지 지쳐도 끝내는 계속해냈던 사람이 등을 밀어주었으니까 세상을 뜬 지 십 년이 지났어도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람의 조각이 우리 안에 있으니까 3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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